유월절 기원과 의의 – 유월절은 어떤 날입니까?

유월절 생각만 하면 하나님께 감사가 절로 나온다. 왜 유대인의 명절을 떠올리며 하나님께 찬미하는지 궁금한가? 유월절의 기원과 의의를 명확히 알게 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유월절 기원

애굽의 노예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

유월절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중 ‘요셉’이란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형들의 시기로 애굽(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총리의 자리까지 올랐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견지명을 바탕으로 극심한 흉년으로부터 애굽을 구제하는 등 놀라운 통치력을 보인 요셉으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애굽인들의 인식은 굉장히 좋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말이다(창세기 37~47장 참조).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요셉의 치적은 서서히 잊혀졌고, 그에 반해 이스라엘의 총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애굽인의 입장에서 이스라엘인들은 그저 이방인이었다. 언제 다른 마음을 먹고 적국과 손을 잡고 자신들을 공격해도 이상할 것 없는 이방인. 이스라엘인이 늘어날수록 애굽인들의 막연한 불안감도 따라서 팽창했다.

결국 요셉을 잘 알지 못하는 바로(파라오)가 즉위하자 일이 터졌다. 이스라엘인들을 노예로 삼아 창고로 사용할 성들을 쌓게 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고역에 시달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유월절 유래
애굽의 노예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

종일토록 채찍에 맞으며 밤이 오기를 그리워하다가, 짧은 밤을 맞으면 곧 다가올 아침을 두려워하는 삶을 400여 년이나 견뎌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애굽에서 제발 구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드디어 모세라는 선지자를 보내셨다(출애굽기 1~2장 참조).

열 가지 재앙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애굽에 갖가지 재앙을 내리셨다. 하지만 바로는 일단 재앙이 창궐할 때는 이스라엘인들의 해방을 약속했다가 재앙이 그치면 말을 번복하기 일쑤였다.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가 20세 이상 장정만 60만 명 정도였다고 하니(출애굽기 12:37), 인구수가 곧 국력이었던 당시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바로의 신하들마저 “이제 그만 좀 그들을 보내주십시오! 나라가 망하게 생겼습니다!”라고 읍소할 정도로 애굽의 피해가 막심했지만(출애굽기 10:7)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것을 볼 때, 그저 바로의 고집이 대단했다고 판단하는 게 더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유월절 열 가지 재앙
일곱 번째 재앙 (마르틴 존 作)

여하튼 아홉 번째 재앙이 내릴 때까지도 바로는 완강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고집을 꺾기 위해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준비하셨다. 바로 장자를 멸하는 재앙이다. 그리고 애굽 전역을 휩쓸 죽음의 손길로부터 이스라엘인들을 구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오늘의 주제인 ‘유월절’을 지키라 명하신다.

최초의 유월절

유월절의 필수 제물은 생후 일 년 된 수컷 어린양이었다. 각 가족마다 식구를 위해 어린양을 잡았고 인원이 너무 적은 가족은 다른 가족과 인원수를 합쳐서 어린양을 몇 마리 잡을지 계산하였다. 이 달이 ‘유대 종교력 1월’이 되었다. 제물로 쓸 어린양은 이 달 10일에 선택하여 14일에 잡았다. 어린양의 피는 각 가족의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발랐고 그 고기는 무교병, 쓴 나물과 함께 저녁에 먹었다. 고기는 머리와 정강이, 내장까지 다 불에 구워서 먹어야 했으며 만약 아침까지 고기가 남으면 그것은 불에 태워서 없애야 했다(출애굽기 12:1~10).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최초의 유월절을 지키게 하시고 그날 밤, 마지막 재앙을 애굽 전역에 내리셨다. 애굽 전역에는 슬퍼 부르짖는 소리가 가득 찼고 이 절규는 바로의 왕궁에서도 새어 나왔다. 그의 미래나 다름없었던 장자의 몸이 창백하게 늘어진 것을 보고, 바로는 더 이상 아집을 유지할 수 없었다.

최초의 유월절
파라오의 장자의 죽음 (로렌스 엘마 作)

그 다음날, 이스라엘은 그토록 기다리던 해방을 맞았다. 고토(故土) 가나안으로 돌아가기까지 무려 430여 년. 참으로 오랜 세월을 기다린 끝에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다.

유월절의 의의

앞서 설명했듯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을 맞은 날이다. 이 날이 단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복절로 그친다면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성경에 실릴 이유는 더더욱 없다. 왜냐 하면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록된 책이기 때문이다(디모데후서 3:15).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이 날을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께서 직접 이 날을 지키시는 본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2:15, 19~20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지키기를 원하고 원하신 날이 기독교인들과 무관하다고 치부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더욱 정확히 알고 예수님의 본을 따르고자 힘써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행적을 성도들이 그대로 실천하기를 원하셨다(요한복음 13:15, 14:15).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러한 본을 보이셨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앙을 가지는 본질적 목적에 대한 정립이 필요하다.

모든 인류는 죄인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죄인이라 말씀하셨다(마태복음 9:13, 누가복음 19:10, 요한복음 3:17 참조). 죄인들이 모여 사는 곳을 감옥이라 부르는 만큼 이 지구는 분명 영적 죄수들이 모여 사는 형무소임을 알 수가 있다.

유월절 지키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영적 사형수
모든 인류는 죄의 대가로 영혼의 감옥에 갇힌 사형수들이다

모든 인류는 삶의 순간이 다하면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고 최후에는 영혼까지 죽음의 고통을 당하여 소멸하고 말 운명에 처해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이야기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자탄하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하였던 것이다(로마서 6:23, 7:24 참조).

그러나 인류가 죄 때문에 죽게 되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해 죄만 사라진다면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의미가 된다. 죄를 용서받는 방법으로 허락해주신 길이 바로 유월절이다.

죄 사함의 길 유월절

예수님께서 유월절 속에 ‘죄 사함’의 효력을 담으신 데는 이유가 있다. 죄를 용서받는 것만이 인류에게 주어지는 근본적 구원이라는 사실을(누가복음 1:77)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통 받고 있었듯 인류는 죄악 세상에서 죽음의 고통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통해 자유를 주셨듯, 예수님께서도 유월절로 인류를 죄악 세상에서 해방시키시고 천국을 바라볼 수 있게끔 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26장 26절

이제 이 글을 읽은 만큼, 서두에서 왜 유월절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찬미가 절로 나오는지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스스로 형량을 없앨 수 있는 죄수가 없듯 스스로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유월절을 지켜야만 한다. 하지만 이 글을 읽기 전까지는 그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 터. 주변에 지키는 이가 아무도 없었을 테니 그럴 만도 하다. 이제 반드시 이 절기를 지켜야 함을 알았다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절기를 지키는 곳, 하나님의 교회를 찾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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