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뜻 – 재앙이 넘어가는 절기[逾越節, Passover]

유월절 뜻: ‘재앙이 넘어가는 절기’다. 넘을 유(逾)에 건널 월(越) 자로 이루어진 절기명에서도 이러한 의미가 드러난다. 유월절은 영어로 패스오버(Passover), 고대 그리스어로는 파스카(πασχα), 히브리어로는 페사흐(פֶּסַח)라 부르며 모두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누구나 낯선 대상을 접할 때 그 이름에 특히 주목한다. 이름은 어떤 대상을 정의하는 함축적이면서도 명확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유월절 뜻 을 ‘재앙이 넘어간다’로 정하셨을까?

유월절 배경에서 비롯된 유월절 뜻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 이집트에서 400여 년간 노예로써 고통 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모세를 보내셨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으려는 파라오의 마음을 꺾고자,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 이집트에 각종 재앙을 일으켰다. 하지만 물이 피가 되고 독종이 온 몸을 뒤덮어도 바로의 아집은 끈질겼다. 이집트 전역에 파리와 메뚜기가 날뛰고 불 섞인 우박이 쏟아지는 탓에 “제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주시오!”라며 절규하는 백성들의 호소에도 파라오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런 파라오를 무너뜨리기 위해 한님께서는 최후의 재앙을 준비하셨으니, 그것은 모든 초태생(初胎生)의 멸절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재앙으로 장자를 잃지 않도록 도피처를 마련해두셨다. 그 절기가 바로 유월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대로 생후 일 년 된 수컷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다. 그 피는 재앙으로부터 보호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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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렇게 맞이한 운명의 밤. 고요하던 이집트는 삽시간에 비통한 애곡으로 뒤덮였다. 유월절을 지키지 않은 대가로 모든 이집트의 백성들이 장자를 잃고 만 것이다. 파라오의 아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힘없이 늘어진 아들의 팔을 바라보며 파라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울음을 삼켰을 것이다. 수많은 후회와 더불어 애통함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모세에게 백기 투항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겠노라고.

유월절 다음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토록 꿈꿔오던 가나안으로의 첫발을 내디뎠다. 유월절은 그렇게 처음 제정되던 그 때부터 ‘재앙이 넘어가는 절기’로 자리를 잡았다.

출애굽 이후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로도 유월절을 통해 재앙에서 보호받은 사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입성한 이후 사사(士師) 시대와 통일 왕국 시대를 거쳐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분열된 시기를 맞이했다. 이때 두 나라를 위협하던 당시의 강대국이 있었으니 바로 아시리아(성경의 앗수르) 제국이다. 북왕국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재위 7년째 되던 해,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는 아시리아의 침략을 받아 포위되었고 3년 후 결국 함락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조상인 야곱의 아들들의 이름을 딴 12지파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10개 지파가 북왕국 이스라엘에 속해 있었고 고작 2개 지파만 남왕국 유다를 구성하고 있었다. 자신들보다 훨씬 국력이 강한 북왕국 이스라엘의 참혹한 멸망을 목도한 남왕국 유다로서는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아시리아는 남왕국 유다 역시 내버려두지 않았다. 군대를 끌고 수도 예루살렘까지 진격해 와서는 보란 듯이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며 그들을 위협했다.

“하맛과 아르밧, 스발와임과 헤나에도 신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신도 우리 아시리아를 막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너희의 여호와라고 다를 줄 아느냐!”

그들은 기세가 등등했다. 그리고 실제로 틀린 말은 없었다. 여러 나라를 정복하면서 자신들의 신에게 부르짖는 이들을 많이 만나보았을 터. 그러나 그 어떤 신도 그들을 구해주지 않았다. 아시리아는 그 힘이 천하무적인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참 신’을 만나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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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립의 패배 (페테르 파울 루벤스 作). 역시 사람은 겸손하고 봐야 한다.

열왕기하 19:34~35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아시리아) 진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하나님께서는 큰 힘을 들이지도 않으셨다. 아시리아의 전군(全軍)이 몰살당하는 데는 하룻밤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감히 하나님을 저주했던 아시리아의 왕은 고국에서 아들들에게 배신당해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역대하 32:20~22).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는 모두 하나님을 믿는 나라였는데 어째서 남왕국 유다만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을까? 이 글의 제목에 힌트가 있다. 유월절을 지켰는지 지키지 않았는지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갈린 것이다.

유월절의 신비

아시리아의 사마리아 침공이 있기 4년 전, 남왕국 유다의 히스기야왕은 온 이스라엘 땅에 보발꾼을 보내어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역대하 30:1~10). 이미 몇 차례 아시리아의 공격을 받았던 이스라엘을 위해 “유월절을 지키면 아시리아 왕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도 함께 담았다. 그러나 북왕국 이스라엘의 많은 이들은 그 소식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 그도 그럴 것이 북왕국 이스라엘은 나라가 세워진 그 시점부터 우상숭배를 자행했으므로(열왕기상 12:25~33) 그 백성들은 200년이 넘도록 유월절을 지키기는커녕 들어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는 소식이 난데없이 들린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선택의 결과로 북왕국 이스라엘은 멸망을 맞았다.

열왕기하 18:6~9 “히스기야왕 사 년 곧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칠 년에 앗수르(아시리아)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삼 년 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 이는 저희가 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고 그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모든 명한 것을 거스려 듣지도 아니하며 행치도 아니하였음이더라”

이러한 역사는 ‘재앙이 넘어가는 효과’라는 유월절 뜻 이 이집트 사건 이후로도 유효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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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초 뒤에 무슨 일이 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불확실한 위험에, 70억이 넘는 인류가 노출되어 있다.

누구나 자신의 앞날을 알고 대비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뉴스 속 교통사고의 피해자도,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만 환자도, 자연 재해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이재민도, 너무나 당연하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또 계획하던 이들이다. 몇 초 뒤에 닥칠 불행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불운한 사고를 당한 이를 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운하다”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러나 그 불운한 사람과 그를 바라보는 나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그의 불운이 언제 나의 것이 되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하나님을 만나 구원을 비는 데에도 적절한 때가 있고, 이미 늦은 때가 있다. 너무 늦기 전에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이사야 55:6~7).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재앙을 피하는 방법’인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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