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 죽음의 기원과 영생의 비밀이 공존하는 곳

에덴동산 이야기 속에 수많은 비밀들이 감춰져 있다는 것을 아는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최초의 인류가 선악과를 먹은 대가로 죽음의 저주를 안게 된 역사만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죽음의 기원에만 주목할 뿐 영생의 비밀에는 관심을 가지지 못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죽음의 역사가 시작된 곳에 아이러니하게도 영생의 비밀 역시 공존하고 있다는 점. 이번 포스트에서는 이 부분에 주목해보려 한다.

에덴동산

에덴동산의 위치와 풍경

창세기에서는 에덴동산의 위치와 풍경을 꽤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에덴동산에서는 네 줄기의 강이 흐르는데 각각 그 강들의 이름이 첫째는 비손(Pishon), 둘째는 기혼(Gihon), 셋째는 힛데겔 곧 티그리스(Tigris), 넷째는 유프라테스(Euphrates)다. 강들이 흐르는 길에 대한 묘사도 되어 있는 만큼 이러한 정보를 토대로 많은 전문가들은 오늘도 에덴동산의 위치를 가늠하고 있다.

에덴동산
인류의 죽음이 시작되었지만, 영생의 비밀도 감춰진 신비의 땅. 에덴동산.

선악과와 생명과

에덴동산을 연상시키는 대표적 상징물은 바로 선악과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이들도 선악과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봤을 정도고, 남자의 울대뼈를 가리키는 영어 표현이 ‘아담의 사과(Adam’s apple)’인 것만 봐도 이 이야기가 얼마나 대중적인지 짐작이 가능하다. 이 이야기를 심플하게 한 줄로 정의하자면,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고 죽게 되었다’ 정도가 되겠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인류의 원죄라고 부르며, 왜 모든 이들이 태어나서 죽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해답으로 이 이야기를 제시한다(창세기 2~3장 참조).

하지만 에덴동산에는 선악과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고 죽게 된 아담과 하와에게 한 가지 금지사항을 정하셨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창세기 3:22~24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이 말씀을 주실 당시 아담과 하와는 이미 선악과를 먹은 죄로 죽게 된 신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이 생명과에 다시 손을 댈 수 없도록 굳이 길을 막으셨다. 선악과를 먹은 자에게도 생명과의 효력은 여전하다는 방증이다.

의미 없는 가정일 수도 있지만, 선악과를 먹고 죽게 된 아담과 하와라도 생명과만 다시 먹을 수 있었다면 계속 영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모르실 리 없는 하나님께서는 생명과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길을 막으셨고, 그렇게 아담으로부터 모든 인류는 죽음의 저주에 빠지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인류가 죽게 된 원인은 선악과를 먹어서가 아니라 선악과를 먹은 후 생명과를 먹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겠다.

선악과, 에덴동산
이 과일이 생명과라면, 얼마나 좋을까!

에덴동산 속 생명과를 먹는 법

그렇게 영원히 에덴동산의 생명과가 봉인될 것이라면 굳이 이 포스트를 작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전하실 때 비유를 자주 베푸셨는데, 그 이유는 창세의 역사 속에 감춰진 비밀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하셨다(마태복음 13:34~35). 예수님의 비유 속에 감춰진 창세의 비밀은 무엇일까? 아무 비유나 찾아볼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해 교훈하신 말씀을 살피는 게 좋겠다.

요한복음 6: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에덴동산 이야기에서 영생의 비약으로 등장하는 소재는 생명과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영생의 양식은 당신의 살과 피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곧 생명과를 먹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2천 년 전에 승천하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실제로 먹을 수 있을 리는 없는데 말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방법

누가복음 22:19~20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의 말씀을 통해 볼 때 예수님의 살과 피는 각각 떡과 포도주를 의미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떡과 포도주는 흔히 구할 수 있는 그것이 아니다. 무엇이 특별한가? 앞서 예수님께서는 이 만찬석을 ‘유월절’이라 명하셨다(누가복음 22:15). 유월절에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라야 에덴동산의 생명과와 같은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제 모든 인류는 유월절을 지키기만 하면,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요한복음 11:25~26)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설령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하나님과 함께할 영원한 삶을 약속 받기 때문이다.

생명과의 길은 아무나 열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에덴동산 이야기에서 잊어선 안 되는 점이 하나 더 있다. 생명과에 나아가는 길을 막으신 분은 다름아닌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막으신 길을 일개 목사가 다시 열 수 있겠는가? 만약 천사라 해도 하나님께서 막으신 길을 함부로 열었다간 큰 책임을 면치 못할 터. 결국 생명과의 길을 열어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으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에덴동산, 생명과의 문, 생명과, 하나님
아무나 열 수 없는 생명과의 문. 그 문을 여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예수님께서도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밝히셨다(요한복음 10:10). 언젠가는 다하고 말 수명을 잠시 연장시키는 것을 ‘생명을 주셨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진정한 생명이란 그 수한이 다하지 않는 것. 영원히 살아야만 진정한 생명을 얻었다고 하겠다. 그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생명과의 실체인 당신의 살과 피를 먹을 수 있도록 유월절이라는 진리를 허락하시어 영생의 길을 열어주셨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토록 중요한 유월절은 A.D.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폐지되고 말았다. 유월절을 지키기 어려운 여건에 놓이자 사람들은 차츰 영생의 길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7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이제 사람들은 유월절 날짜가 언제인지조차 생소한 지경에 이르렀다. 생명과의 길은 영원히 막혀버린 채로 있을 것인가? ‘안상홍님,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베푸신 하나님’이라는 포스트에서 그 답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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