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기세덱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님

멜기세덱? 그런 사람이 성경에 나오나? 싶은 생각이 드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 이름부터 참 생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성경에도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자세하게 묘사되지 않은 미스터리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이 인물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한다. 왜냐 하면, 성경은 장차 오실 구원자가 ‘이 인물과 같은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예언하였기 때문이다.

멜기세덱 그는 누구인가

최초 등장

그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과 조우하는 장면으로 성경에 처음 등장한다. 그때 아브라함은 포로가 된 조카 롯을 구출하고자 여러 나라의 왕들과 싸워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만나서 복을 빌어주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할 때 사용한 제물은 떡과 포도주였다. 당시의 통상적으로 제사에 사용된 제물은 ‘짐승’이었다. 이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유서 깊은 방식이다. 이런 시대에 떡과 포도주만으로 축복을 빌어주는 제사장은 그가 유일했다.

멜기세덱, 아브라함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의 만남(마에텐 드 보스 作)

구원자를 상징

이렇게 잠깐 등장하는 단역인가 싶었던 이 인물은 난데없이 다윗의 시편에서 다시 등장한다.

시편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이 영원한 제사장은 누구란 말인가? 놀랍게도 이 말씀은 단순한 시구(詩句)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구원자, 예수님을 가리키는 예언이었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아들의 입장으로 이 땅에 오시어 고난을 받으신 분 즉 예수님께서 이 예언의 주인공이라고 해석하였다(히브리서 5:8~10). 히브리서의 기자는 어떤 근거로 이러한 서술을 남겼을까? 그는 멜기세덱과 예수님이 같은 방식으로 축복을 빌어주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마태복음 26:26~28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는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 장면이다. 성경에서 떡과 포도주로 축복을 베푸는 장면은 딱 두 번만 등장한다. 예수님께서 떡과 포도주로 축복을 빌어주신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분명히 시편에 예언된 영원한 제사장이심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반차?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어색한 단어가 하나 또 등장한다. ‘반차’는 도대체 무슨 뜻인가? 히브리서에서 사용된 ‘반차(班次)’라는 단어는 헬라 원어에서 ‘탁시스’로 기록되었는데, 이 단어는 특정 직무를 행하는 차례를 가리킨다. 정해진 순서에 맞춰 문지기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는 ‘문지기의 반차’를 좇는 것이고, 일정 시간에 따라 경계 근무를 들어가는 이는 ‘파수꾼의 반차’를 좇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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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의 반차에 따라 제사를 집전하시는 예수님

그렇다면 멜기세덱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란? 정해진 순서에 맞춰 멜기세덱의 제사 방식을 집전하는 대제사장을 가리킨다. 이 제사 방식은 떡과 포도주로 축복을 비는 것이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이 제사 방식대로 제자들을 축복하심으로 당신께서 어떤 계열을 따르는 제사장이신지 분명히 보이셨다.

최후의 만찬과 유월절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최후의 만찬은 단순한 성찬식이 아니라 ‘유월절’이라는 절기다. 앞서 살펴본 구절의 앞부분에는 제자들이 ‘유월절’을 준비했다는 기록이 등장하고, 최후의 만찬을 묘사한 다른 성경에서는 만찬석상에서 예수님이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했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마태복음 26:19, 누가복음 22:15). 정리하자면 멜기세덱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은 유월절로 축복을 빌어주시는 분이라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아브라함을 만나서 복을 빌어주었던 그 의식 자체가 유월절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통해 제자들을 축복하실 것을 희미하게 보여주는 모형적 사건이었다. 당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할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떡과 포도주로 축복을 빌어주셨는데, 그 예수님께서는 이 의식을 ‘유월절’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유월절이 멜기세덱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을 결정짓는 중요한 척도가 되는 것이다.

유월절의 중요성

유월절은 그야말로 성경의 핵심 진리 중 하나다. 이 글에서 그 중요성을 일일이 그리고 상세히 서술하기에는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우선 유월절의 유래에서 알 수 있듯 죄악 세상에서 신음하는 인류로 하여금 천국을 바라보게 하신 절기고, 에덴동산에서 선악과의 저주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게 된 인류에게 주신 영생의 비책이기도 하다. 또한 유월절을 통해 첫째 계명을 준수하게 하시어 무지한 인간들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게 하였고, 더불어 유월절(逾越節)이라는 단어의 뜻에 담긴 대로 ‘재앙이 넘어가는 축복’까지 허락해주신다.

유월절
이 정도면 유월절을 성경 속 보화라 칭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멜기세덱에 대한 진리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서, 유월절이 구원자를 알아보게끔 하는 단서의 역할도 수행하게끔 한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보통의 대제사장은 언젠가 수명이 다하면 죽기 마련이므로 자연히 그 뒤를 이을 많은 대제사장들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시작과 끝도 없는 분이시니 수많은 대제사장들이 필요치 않다(히브리서 7:23~28 참조). 다시 말해 멜기세덱 반차의 대제사장은 오직 한 분, 즉 하나님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멜기세덱 = 예수님?

하지만 그토록 힘주어서 예수님과 멜기세덱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던 히브리서의 기자는 돌연 이상한 말을 한다.

히브리서 5: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여태껏 이렇게 분명히 살펴봤는데 해석하기 어려울 부분은 또 무엇일까? 사실 이 당시로서는 예언의 주인공이 예수님이라 단정하기엔 난해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이며, 그에 대한 예언은 또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 다른 포스트에서 상세히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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